소프라노 김지현 “아이 셋 데리고 유학, 그만큼 음악이 좋았다”
작성자 관리자
육아·학업 병행하느라 고된 나날…막내아들 수학영재로 자라나


“아이 셋을 데리고 미국에 유학 간 첫 날, 맨 바닥에 얻어온 이불을 깔고 애들과 누웠어요. 베개가 없어 키친타월을 베고 누웠는데 밤새 얼마나 울었는지 키친타월이 퉁퉁 불어 있더라고요. 이게 제 유학생활의 시작이었어요.”


지금은 미국 오페라 평론가들로부터 “아시아를 대표하는 소프라노”로 평가받는 김지현씨(46·상명대 성악과 교수)의 얘기다. 그녀는 서른셋의 나이에 3·5·9세의 아이들을 데리고 애리조나주립대로 유학을 갔다. 한의사인 남편은 일 때문에 함께 가지 못했고, 고된 육아와 학업은 고스란히 그녀 혼자 몫이었다. 

아침에 늦게 일어난 아이는 짝짝이 양말을 신고 학교에 가야 했다. 자주 병원에 갈 시간이 없어 막내아들은 이를 한꺼번에 네 개 뽑았다. 사람들이 앞니가 없는 아들을 보고 웃었다. 하지만 김씨는 그걸 보고 웃으면서도 울었다. 그녀는 “3년 동안은 거의 매일 울었던 것 같다”며 “아이들이 볼까봐 차 안에서 울었다”고 털어놓았다. 

나이 제한으로 성악 콩쿠르에도 많이 참가하지 못했던 그녀는 2007년 미국 성악교수협회 콩쿠르에서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1위에 입상했다. 2008년 귀국한 이후에는 제4회 대한민국오페라대상에서 여자주역상을 받았고, 굵직한 오페라 무대를 수놓았다. 청아하면서도 강렬한 목소리, 탄탄한 발성과 탁월한 연기력으로 잘 알려진 그녀는 지난해 미국 하우드(Harwood) 매니지먼트와 전속 계약을 맺기도 했다. 

그녀는 “얼마 전 유학 초창기에 썼던 글을 보고 많이 울었다”며 “세상에 영어를 이렇게 못했는데 어떻게 그 실력으로 논문을 쓰고 박사를 끝냈을까 싶었다”고 말했다.

“음악에 대한 꿈과 절대 출처나 근거를 알 수 없는 자신감, 이 두 가지가 시작이었어요. 뭔가 대단한 재능을 타고 났다거나 엄청난 능력이 있어서가 아니라요.”

유학 당시 그녀가 공부를 하면 아이들은 음대 도서관에서 뛰어놀았다. 공부하는 엄마를 보며 아이들도 덩달아 자연스럽게 공부하는 습관을 가지게 됐다. 정작 엄마는 한 번도 아이들에게 공부하란 말을 하지 않았지만, 아이들은 스스로 알아서 했다. 첫딸은 명문 브라운대학교를 졸업했다. 수학영재인 막내아들은 고교 선행이수 미적분(AP calculus) 시험에서 미국 전역 최연소로 만점을 받아 현지 언론에도 수차례 소개됐다. 전 세계에서 이 시험을 치른 10만4612명의 학생 가운데 만점을 받은 학생은 총 11명뿐이다. 

김씨는 “아들이 학교도 가기 전에 종이에 숫자를 쫙 쓰더니 곱하기 나누기를 하며 놀고 있었다”며 “딸들은 숫자를 가르쳤는데 아들은 가르칠 시간도 없고 학교 교육이 전부였는데 참 고맙다”고 했다. 

“애들을 군대식으로 키웠어요. 엄마 입에서 같은 말을 두 번 반복할 만큼 시간적인 여유가 없다고, 그러니 두 번 말하지 않도록 해달라고 했어요. 큰 딸이 참 고생을 많이 했어요. 동생들을 엄마처럼 챙겼거든요.” 

그녀는 “학업과 육아를 병행하면서 어느 한 쪽도 완벽하게 할 수 없다는 게 굉장히 힘들었다”며 “하지만 짐처럼 느껴졌던 애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어느새 나를 도와주고 있더라”고 얘기했다. 

마트를 갈 때면 아이들 챙기랴 무거운 짐 들랴 힘들었지만, 7년이라는 유학 생활이 끝나갈 무렵에는 아이들이 짐을 다 들어줬다. 큰 딸은 논문 오탈자를 잡아줬다.

김씨는 “원래 막내딸이어서 여리고 끈기도 없는 스타일이었는데 어느새 강해져 있더라”며 “가족의 힘이 없었으면 불가능했을 일”이라고 돌아봤다. 

그녀는 오는 19일 바리톤 김동규와 함께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무대에 선다. ‘김동규 & 3소프라노-10월의 어느 멋진 날에’를 통해서다. 또한 23~25일에는 KBS홀에서 공연되는 오페라 ‘도산 안중근’에 게이꼬 역으로 출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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