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날의 칼같은 어학연수
작성자 관리자
공익근무요원 생활을 하고 있던 무렵에, 퇴근 후 시간을 알차게 보낼 요량으로 영어회화학원을 다녔었다. 운 좋게도 좋은 원어민 선생님을 만나서, 친구처럼 지내며 회화실력을 키울 수 있었고, 그 덕분인지 토익성적도 많이 향상시킬 수 있었다.

제대 후에 복학하기까지 시간적 여유가 있었던 나는 뉴욕으로 어학연수를 떠났다. 영어에 대해 어느 정도의 기본은 있다는 자신감, 밀도 있는 영어를 배우고 싶다는 욕심, 더 큰 세상을 경험해 보고 싶은 호기심 등 여러 가지가 맞물려서 적지 않은 비용과 시간을 감수하면서까지 감행한 늦깎이 대학생의 모험이었다. 컬럼비아대학교에서 연수생활을 하게 된 나는 좀 더 많은 외국인 친구들을 만날 수 있을 거라는 기대에 기숙사 신청을 했고, 많은 미국학생들, 혹은 제3국 유학생들과 함께 생활하며 다양한 나라의 문화를 간접적으로나마 느끼며 생활할 수 있었다. 어학연수 과정은 클래스마다 3명의 선생님들이 문법, 독해, 듣기, 작문, 단어 등 여러 가지 요소들을 서로서로 연계시키며, 요소별로 선생님들마다 각기 다른 수업을 하는 것이 아닌, 영어라는 하나의 큰 틀 안에서 수업시간별로 조금씩 다뤄주는 방식이었다.

또한 세계적으로 관광지가 많기로 유명한 뉴욕의 장점을 십분 활용하여 field trip(견학) 수업도 병행하였다. 사전에 책으로 명소나 유적지에 관한 역사적인 배경이나 정보들을 읽어 보게 한 후에 선생님, 반 친구들과 함께 직접 그곳을 방문하여 견학과 소풍을 겸한 멋진 야외수업을 만들기도 한다. 이런 재밌는 과정만 있는 것이 아니라 견학에 관한 느낌이나 감상을 수업시간에 토론해 보고, 에세이를 작성해서 제출해야만 하는 까다로운 과정도 더불어 기다리고 있었다. 수업 외적으로도 학교 체육시설 이용이나, 여러 외국인 친구들과 교류할 수 있는 기회들이 적지 않았다. 나의 경우에는 기숙사 친구들과 좀 더 친해지고 싶은 마음에, 기숙사에서 빈대떡을 많이 만들어 식당에 들어오는 학생들마다 다 조금씩 나누어주곤 했던 기억도 있다. 그 일을 계기로 친해진 미국 친구들이 또 나와 한국 학생들을 초대해 줘서 음식을 만들어 줬던 기억도 있다. 이렇게 해서 친해진 친구들과 캠퍼스에서 같이 운동도 하고, 대화도 나누며 즐거운 시간을 가졌었다.

수업시간에만 하는 영어보다도, 이렇게 친구를 사귀고, 만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영어가 훨씬 견고하고, 오래 갈 거라는 확신도 갖게 됐다. 반면 어학연수라는 것이 가기만 하면 무조건적으로 영어실력이 수직상승하리라는 막연한 맹신도 곤란하다. 더욱이 뉴욕이나 LA 같은 대도시들은 한국학생들이 너무 많아서 한국학생들끼리 몰려다니는 경우가 허다하고, 영어를 거의 안 쓴다 하더라도 생활에 지장이 없을 정도로 한국 관련 시설들이 넘쳐난다. 나의 경우에도, 학교 안에 한국 식당이 입주해 있을 정도로 한국학생들이 많다. 힘든 타국 생활에서 본국 친구들의 존재는 외로움을 같이 견디고, 위로해 주는 순기능과 동시에, 본토에서의 영어사용이라는 어학연수의 본질을 방해하는 양날의 검과도 같음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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